안면도에서 바다가 내다보이는 광활한 땅에 자신과 꼭 닮은 괴짜 흙집을 지어 낸 이기성 씨.
내세울만한 설계도, 화려하고 값비싼 자재도 없지만 이 집은 왠지 모를 광채를 내고 있다.
질기면서 부드러운 집을 짓고자 했던 그의 건축철학이 집 안 곳곳 소담히 스며있기 때문이다.
‘어느 예술가의 요새’라는 제목으로 2002년 7월호에 나왔던 한 흙집이 있다. 이는 시골살이를 마음먹은
후, 건축주가 직접 지은 집으로 3년에 걸쳐 완성한 독창적인 집이었다. 지금도 편집부에는 그 집에 대해 물어오는 문의전화가 간혹 온다. 다시
들춰보아도 전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감수성이 담긴 집. 그 주인공인 이기성 씨가 안면도 내에서도 기(氣)가 가장 좋다는 언덕배기에 집 한
채를 또 지어냈다. 전작의 독특한 생김새에 반한 김대향 씨가 건축을 의뢰하면서 탄생한 주택이다.
3년 전부터 구상한 바닷가 주택이기성 씨 작업실에는 3년전부터 만들어 놓은 특이한 주택모형이 있다. 나중에 바다가 내다보이는 곳에 터를
잡으면 꼭 만들고 보리라 생각했던 집이다.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듯한 형태.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던 그 꿈은
얼마전 바닷가 옆 안면도에서 드디어 실현되었다.
흰 깃털 대신 돌과 흙으로 날개를 삼고 동그란 둔덕으로 새의 목덜미를 흉내냈다.
그런데 머리를 앉히려니 도통 고민이었다. 땅의 기운이 너무 세서 집이 높으면 기가 너무 센 집이 될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래서 집은 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앞에서 보면 여전히 새 한 마리가 웅크린 것 같지만, 멀찌감치 옆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얼굴이죠. 집 뒤
쪽에 아예 둔덕을 더 만들어 여자의 가슴을 본 떳어요. ”
가슴은 풍요와 잉태의 상징.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한 집으로 만들어지자
건축주 역시 흡족해 했다고 한다. 독수리 머리에서 어머니 가슴으로 전환하다보니 가슴이 짝짝이가 되버렸지만, 이기성 씨와 김대향 씨 둘다 개의치
않는다. 그야말로 괴짜들의 쿵짝이다.
질기면서 부드러운 집을
원하다설계는 변경되었지만, 애초 집에 대한 생각은 여지없이 이어졌다. 내세울만한 설계도, 화려한 자재도 없이
그저 흙과 돌로 살 사람의 기운과 땅의 기운에 맞춰 맘 가는대로 짓는 것이다. 단, 기본전제는 있다. 질기면서 부드러운 집. 이는 가죽공예가였던
이기성 씨만의 철학이었다. 가죽 특유의 투박함과 동물의 근원적인 냄새가 배인 그윽한 외관은 낮고 안정적인 형세에 두껍고 단단해보이지만, 곳곳에
부드러운 곡선을 품고 있다.
독수리 부리 모양의 포치가 달린 현관의 가죽문을 열어젖히고 묵직한 느낌의 현관을 들어서면 부드러운
노란색 빛이 쏟아져 내린다. 한지 냄새가 그윽한 바닥과 황토 벽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진정 어머니의 품 속으로 들어선 것
같다.
석회질이 흘러들어 만들어진 동굴처럼, 모난 곳 하나 없이 이어지는 벽면을 따라 거실이 등장한다. 마치 미로 속에 온 듯하다.
거실에서는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고, 주방쪽에서는 소나무 밭이 보인다. 둥근 창들은 밖을 향해 입을 벌린 듯 아기자기한데, 때마침 내리는 새하얀
눈발을 맛보고 있는 듯하다.
펼쳐지는 상상력, 기발한 독창성집 안에는 공예가만의 손맛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속속 찾아볼 수 있다. 주물난로에 황토를 덧발라 만들어 낸
벽난로에, 곡선벽면을 따라 특수제작한 장식선반들. 창틀과 문은 한옥 고자재를 활용해 짠 뒤 가죽을 덧대어 문양을 새겨 넣었다. 특히 부엌에는
벽면을 뚫어 긴 항아리를 박아 저장고를 만들고, 황토벽돌을 쌓아 싱크대도 만들었다. 그 뒤에는 쭈그려 앉아 뭐든 만들 수 있는 다용도실까지
덤으로 있다.
욕실도 참 오묘하다. 계란의 노른자처럼 샛노란 벽칠에 커다란 흰 욕조. 그 옆으로는 온통 통창이다. 반투명유리도 아닌
것이 참으로 민망하겠다는 질문에 그는 워낙 오지라 훔쳐볼 사람도 없다고 심드렁하다. 긴 머리 척척 감아 묶고 일일이 작은 돌 주어 담을 쌓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온다.
작은 소품에서부터 전체를 이루는 집의 형태까지 모든 것이 세상에 단하나 뿐인 작품. 독특하고
새로운 모습의 집은 소재와 꾸밈 모두가 원래 자연인지라 삶의 생기와 편안함이 그대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설계노트
위치 : 충북 태안군 남면 달산리
대지면적 : 300평
건물규모 : 단층
건축면적 : 45평
공법 : 기초- 철근콘크리트
지상- 목구조흙벽돌
구조재 : 육송
창호재 : 고나무
외벽재 : 흙벽돌
지붕재 : 아스팔트, 알루미늄, 동
마루재 : 종이장판
설계 : 봉통공방
취재ㆍ김유진 기자|사진ㆍ변종석 기자|취재협조ㆍ봉통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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