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자료방

[스크랩] 아브라함 링컨의 추억

노송황토 2007. 1. 7. 10:23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자신의 침대 때문에 지금껏 곤욕을 치르고 있다.

링컨의 친한 친구였던 조슈아 스피드가 썼던 '아브라함 링컨의 추억'에 묘사된 침대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묘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역사가들 중 몇몇은 그 침대가 링컨 대통령이 게이였음을 확신시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일단 그 문제의 침대에 관한 회고록에 귀를 기울여보자. 때는 1837년, 변호사 자격증을 갖게 된 링컨이 스프링필드를 여행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링컨은 28살의 청년이었고, 회고록을 쓴 조슈아 스피드는 24살이었다.

그는(링컨) 옷가지를 넣은 가방 하나만 안장에 매단 채로 빌린 말을 타고 마을로 들어왔다. 나는 스프링필드에서 장사를 했었기 때문에 큰 가게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 가게에는 의류, 식료품, 철물, 책, 약, 침대보, 매트리스 등 실제로 마을에서 필요한 물건은 거의 다 갖추고 있었다. 링컨은 가방을 손에 들고 가게에 들어왔다.

그는 싱글 침대에 필요한 것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매트리스, 담요, 시트, 침대보, 베개 등이 모두 17달러라고 말했다. 그는 비싼 가격은 결코 아니지만 자기는 지금 그만큼 지불할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크리스마스까지 외상을 줄 테니 그때까지 변호사 일이 성공한다면 17달러를 갚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처량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지만 실패하면 난 갚을 길이 없어."

지금까지도 나는 그렇게 처량해 보이는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작은 외상 하나 지는 일을 너무 힘들어하는군. 내가 외상을 지지도 않고 당신의 목적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하나 제안하지. 위층에 더블 침대가 놓인 큰 방이 하나 있는데, 침대를 나와 같이 나눠 쓰는 것은 어떤가?"
"방이 어디에 있다고 말했는가?"

그가 물었다.

"이 위층이라네."

나는 가게에서 내 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가리켰다.
그는 가방을 팔에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놓은 다음 아주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기쁨으로 얼굴이 환하게 빛나면서 그는 소리쳤다.

"자, 미스터 스피드. 난 방금 이사했네!"



이후 아브라함 링컨은 4년 동안이나 스피드와 함께 윗층의 침대를 썼다. 이것은 스피드의 회고록 뿐만 아니라 많은 전기 작가들이 증언하고 있는 사실이다. 몇몇의 작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성인 두 남자가 함께 한 침대를 4년 동안이나 같이 쓸 수 있단 말인가? 칼 센드버그Carl Sandburg는 "Abraham Lincoln: The Prairie Years"(1926년)에서 그들의 관계를 '5월의 제비꽃 같은 얼룩과 라벤다 향기'라고 표현함으로써 당시의 호모포빅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조심스럽게 동성애를 암시했다. 전기 작가 중 문제의 침대에 관해 가장 의심의 눈빛을 보낸 작가는 소설 '링컨'을 집필했던 비어 고달이었다. 그는 집필하는 동안 링컨의 생애에 몇 가지 의구심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링컨 연구가들은 이런 의구심을 근거 없는 것이라 일축했다. 그들은 링컨과 스피드가 4년 동안이나 함께 사용했던 그 침대는 19세기 중반만 해도 일리노이 주의 변경과 서부의 많은 지역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부 개척 시대, 험란한 황야에 목장을 짓고 소를 방목하던 카우보이들이 불편하긴 하지만 단칸 방과 한 침대에서 뒤엉켜 잤던 데서 그 '침대의 공유'가 유래했다는 게 그들의 분석이었다. 그렇지만 월트 휘트먼의 전차 운전수에 대한 각별한 애정, 젊은 샐리 허밍스라는 노예와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냐는 토마스 제퍼슨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링컨의 침대는 당시 시대 뿐만 아니라 근래에 들어까지 각별한 의미가 부여된 채 무성한 '소문'으로 떠돌아 다녔다.

'게이 100選'의 저자인 Paul Russell은 그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국 자신의 게이 명단에서 링컨을 제외해버렸고, 로그 카인 공화당 멤버들조차 그런 소문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표명하곤 했다.

(사진 : 래리 크래머Larry Kramer)

그러나 1999년 2월, 뜻하지 않은 반격이 개시되었다. 미국의 게이 커뮤니티는 일순간 동요하기 시작했다. 래리 크래머Larry Kramer의 "The American People"라는 책이 바로 그 소용돌이의 주범이었다.

특히나 래리 크래머가 워낙 유명한 게이 엑티비스트인 까닭에 그 소용돌이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가 없었다. 래리 크래머Larry Kramer가 누구인가? "Women in Love"로 아카데미 시나리오 작가 상 후보에 오르고 "The Normal Heart"로 풀리쳐상 후보에도 지명되었던 명망 있는 62세의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는 미국의 양대 게이 에이즈 단체라 부를 수 있는 Gay Men's Health Crisis와 ACT UP의 설립자였다. 그는 아메리카 게이 역사를 재구성하겠다는 포부로 그 책을 통해 저명한 인사들의 섹슈얼리티를 언급하는 와중에 미국의 첫 번째 게이 대통령으로써 아브라함 링컨을 '아웃팅ounting'시켰던 것이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그 주장의 무게는 제법 묵직할 수밖에 없었다. 래리 크래머는 그 책의 발간과 더불어 가진 메디슨 강연에서 단호하게 주장했다.

"나는 아브라함 링컨이 게이였으며, 그것도 완벽한 게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건 단지 어떤 짧은 기간 동안 그랬던 게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그는 강연장에서 즉석으로 스피드의 일기장의 몇 구절을 낭독했다.

"종종 내가 그를 희롱하기라도 하면 그는 나에게 키스했고, 나를 숨막히게 했다."

"그는 그의 긴 두 팔로 나를 깊게 포옹했다."


파격적인 문구가 아닐 수 없었다. 래리 크래머의 "The American People"의 내용은 더 파격적이고 놀라운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링컨과 그의 연인 스피드는 4년 동안 한 침대에서 같이 사랑을 나누었으며, 후에 링컨은 결혼하기 싫어하는 스피드를 달랬다.

"만약 니가 침착하게 결혼식을 끝낸다면, 어느 누구도 놀라지 않을 거야. 너는 안전해. 의심받지 않을 거야." (링컨의 편지 중에서)

물론 그들은 실제로 두 사람 모두 결혼해서 아이들을 가졌다. 전기 작가들은 크래머의 주장을 비판하면서, 링컨은 아내 말고도 다른 여자들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으며 심지어 매춘굴에서 매독을 얻기조차 한 사실을 증거로 내밀었다.

하지만 래리 크래머는 예전에 너희들은 월트 휘트먼의 여성 관계를 들먹이며 그가 이성애자였다고 주장했지 않았냐며 '여성 편력' 운운하는 그들을 조롱하기조차 하는 여유를 가졌다(이후 휘트먼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 래리 크래머는 링컨이 스피드 말고 다른 남자와도 관계가 있었으며, 당시 점차적으로 형성되던 은밀한 게이 커뮤니티의 존재도 알았을 거라고 주장했다(19세기 중반 이후 미국에서도 아일랜드계에서부터 서서히, 은밀하게 게이 게토가 형성되어졌다). 뒤이어 래리 크래머는 아예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뒤집어 엎을 것처럼 놀라운 주장을 펼친다. 링컨을 살해한 남자는 '호모포비아'이거나 링컨과 애정에 있어 문제가 있는 남자일 거라는 거였다! (실제로 아브라함 링컨의 암살에 대해서는 정치지도자의 암살이 대부분 그렇듯 미스테리에 휩싸여 있다. 그리고 링컨이 암살당한 포드 극장의 관객은 우연하게도 대부분 여성들이거나 게이들이었다. 특히, 공교롭게도 휘트먼의 연인인 피터 도일이 암살 순간에 그곳에 있었다)

그야말로 미국의 역사를 재집필해야만 될 것 같은 도발적인 주장이었다. 수많은 링컨 연구가들은 아예 래리 크래머의 주장을 무시하는가 하면, 사실을 날조하고 있다고 길길이 날뛰며 비판했다.

과연 래리 크래머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왜냐하면 메디슨 강연에서 낭독했던 스피드의 일기장, 그리고 "The American People"에 제시되어 있는 편지들의 실체가 아직도 묘연하기 때문이다. 래리 크래머는 스피드의 일기장과 편지들이 바로 그 '침대'가 놓여져 있던 스피드의 가게 윗층 방의 마루바닥 밑에 숨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일단 그것들을 내놓아보라고 요구했지만, lowa에 사적인 수집품으로 잘 보관되어 있다고 말할 뿐 증거에 관한 실체 규명에는 빈 손바닥을 들어보이며 자신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여실히 성의 없는 태도였다.

아직도 확보되지 못한, 그러나 래리 크래머 혼자 알고 있다고 주장되어지는 편지들과 일기장은 그것의 실체가 픽션일지도 모르는 위기 속에서, 지금도 어딘가 먼지 구덩이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링컨은 게이였을까?

이 물음은 역사의 재봉선을 뜯고 침묵의 먼지 속에 휩싸여 있던 비밀 일기장을 훔쳐보는 쾌락을 안겨준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해석의 각축장이며, 하나의 해석을 강제하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 끊임없이 가동되는 가변의 산물이다. 문제는 진실 게임을 하기 위해선 적당한 자료와 증거들을 동원하는 성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래리 크래머는 성실성이 결여되었다.

많은 역사가들이 증언하듯 19세기 중반의 미국 사회에도 분명히 남성들간의 호모에로틱한 관계는 존재했으며, 때때로 작긴 하지만 게이 게토가 형성되기도 했다. 링컨과 친한 관계에 있던 월트 휘트먼은 이미 전차 운전수 사냥꾼으로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스피드와 링컨이 4년 동안 함께 사용했다는 그 침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정녕 링컨을 게이로 복원시키길 원한다면 래리 크래머의 목을 조르든지 아니면 스프링필드의 모든 마룻바닥을 뜯어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며, 다른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출처 : 아브라함 링컨의 추억
글쓴이 : 노상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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